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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지를 어찌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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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252호 발행인 인선(강재훈) 발간일 2020-11-01 신문면수 9면 카테고리 종합 서브카테고리 역삼한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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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명 김정수 필자법명 - 필자소속 - 필자호칭 시인 필자정보 - 리라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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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자 총지종 입력일시 20-11-06 13:52 조회 9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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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지를 어찌할까나

늦은 점심을 먹고 아내와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던 아내가 ‘아차’ 하며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코로나19 시대 외출의 필수품인 마스크를 놓고 온 것. 오늘은 늘 가던 홍제천 대신 서울 은평구에 있는 수국사로 발길을 옮겼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황금사찰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산책을 핑계로 같이 가보기로 했다.

걷기에는 좀 먼 거리인지라 버스를 탔다. 큰길가 수국사 입구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떠난 사람들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개발은 인간에게 기회와 번영을 확대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어쩌면 불평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주위가 개발되는 모습을 자주 지켜보게 된다. 언덕 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집들이 헐리고 하늘을 찌를 듯한 아파트가 들어섰다. 덕분에 전철역을 오가던 좁고 어둡던 길이 넓고 환해졌다. 좀 더 편하고 안전한 길이 되었지만, 그 후 골목을 지나면서 반갑게 인사하던 사람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가난한 그들은 번듯한 아파트에 대부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빈곤퇴치를 위한 것이 빈곤을 심화시키는 역설. 그들과의 인연은 끝인 걸까. 

부처님은 ‘나’를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연이 선연 혹은 악연의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셨다. 수국사 주지 호산 스님은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연도 악연도 없습니다. 제행(諸行)이 무상(無常)이고 제법(諸法)이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사물적 모습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상대를 대하느냐에 따라 선연이 되기도 하고 악연이 되기도 합니다”라고 했다.

낡고 허름한 집들이나 번듯한 새 아파트 단지나 사물이 변한 것이니 무에 다르겠는가. 그곳에 살던 사람들도, 사람과 더불어 살던 동식물들도 선연의 마음으로 헤어져 인연이 다한 것이니 집착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다 내가 어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무슨 생각을 그리 심각하게 해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수국사 앞이었다. 오래된 절의 해탈문도 없이 계단이 막아섰다. 공사가 한창이었다. 아마도 코로나19로 법회나 템플스테이 등을 할 수 없으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공사를 하는 것 같았다. 절 마당에는 공사 자재가 가득하고 중장비 소리도 요란했다. 멀리 정면에 금칠한 대웅보전이 눈에 들어왔다. 햇빛을 받은 건물이 눈에 부셨다. 대웅보전을 보려고 길을 오르는데 뒤에서 대리석을 실은 지게차가 다가와 경적을 울렸다. 절과 경적, 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니! 경적의 자리엔 마땅히 정적이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수국사는 1459년(세조 5) 의경(懿敬) 세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창건하여 정인사(正因寺)라 했다. 그 후 연산군 10년(1504년) 화재로 소실되어 오랫동안 폐허로 남아 있다가 몇 번의 중수를 거쳐 1900년 초 월초거연(月初巨淵) 스님이 고종의 도움을 받아 중창했다. 1995년 주지 한자용(韓慈容) 스님이 법당 안팎을 황금보전으로 신축했다. 법당을 개금한 지 25년이 되어서 그런지 밖에는 벗겨진 곳이 많았다. 

특히 외벽 3미터쯤까지 심하게 벗겨졌다. 대웅보전에서 미륵불을 지나 지장전으로 나오는 계단은 금방 무너질 듯 위험했다. 대대적인 공사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장전 옆 외진 곳에 황금불상이 보였다. 한눈에 보기에도 불상이 많이 낡았다. “이 불상은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 이전의 싯다르타야.”, “출가 전 태자였다는….”, “그렇지.” 아내와 기도를 드리고 절에서 내려와 자료를 찾아보았다. 아뿔싸! 그 불상은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이었다. 아, 이 무지함을 어찌할까나. 또 이 부끄러움은…. 


시인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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