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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 어머니의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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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3-01 15:09 조회7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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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봄날

 

가끔 그곳에 간다.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가 마주 보고 선 그 바닷가, 어머니의 마흔한 살이 햇살처럼 빛나던 그곳. 방파제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그리움 담긴 수많은 후회가 가슴에 밀려와 부서진다.

마흔하나라는 어머니의 대답에 놀란 건 나뿐 아니라 어머니에게 침을 놓던 의사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1주일에 세 번씩 7개월 동안 침을 맞으면서도 할머니,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하는 의사 선생님의 물음에 가타부타 입조차 떼지 않았던 어머니가 말문을 연 것이다. 식구가 몇이냐고 의사 선생님이 다시 묻자 우리 바깥양반도 있고 딸도 있고 아들도 있고, 손가락을 꼽는 어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행복했던 시절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 그리운 사람들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섬광처럼 그 답이 떠올랐다.

 

뇌출혈로 인한 혈관성 치매가 어머니의 기억을 지우고 있었다. 눈물 많았던 고단한 삶을 벗어버리고 싶었던 것일까. 어머니는 당신의 이름도, 당신의 전부였던 자식들의 얼굴도, 끝내는 먹고 자는 일까지도 모두 잊어버렸다. 어머니의 일상이 무너져 내렸다. 내게 꼬박꼬박 존대를 쓰고, 틈틈이 이삿짐을 싸고, 도둑이 들었다며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텅 빈 누에고치 같은 모습으로 깊고 어두운 늪을 헤매는 어머니의 시간은 당신보다도 내게 더 가혹한 것이었다.

 

세상에는 그보다 더한 부모님을 희생과 헌신으로 끌어안는 자식들도 많고 많건만 매사 부족한 내게는 그 무게가 너무 무겁고 고통스러웠음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나는 아프게 기억한다. 내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봤음을, 나 혼자 견뎌내야 하는 매 순간순간을 희생이라고 생각했음도 고백한다. 하루하루가 탈출구를 가늠할 수 없는 동굴 속을 헤매는 것 같던 그 즈음, 일터에서 돌아온 내게 간병인 아주머니가 상기된 얼굴로 귀띔을 했다.

 

할머니가 바닷가에 사시던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텔레비전에서 요즘 오징어가 풍년이라고, 밤새 오징어잡이에 나섰던 배가 항구로 돌아와 어판장 가득 오징어를 쏟아놓는데 글쎄, 그걸 보시던 할머니가 나도 저기 살았어, 하시는 거예요. 얼마나 놀랍고 반갑던지.

 

마흔한 살, 드디어 실마리가 풀린 느낌이었다. 어머니의 마흔한 살에는 우리 가족이 2년 남짓 머물러 살았던 바닷가 비탈진 마을이 있었다. 아스라한 수평선과 초록빛 바다 위에 길게 이어진 방파제, 나란히 마주 보고 선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로 드나드는 크고 작은 배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던 그 바닷가. 20여 년 모진 시집살이에서 놓여난 어머니가 비로소 소꿉놀이처럼 당신의 살림살이를 시작했던 그곳은 마흔한 살 즈음의 어머니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어린아이가 되어 버린 일흔두 살의 어머니와 쉰을 바라보는 딸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며칠 전부터 여러 차례 얘기를 했건만, 꾸려놓은 여행 가방을 가리키며 당신을 어디다가 데려다 놓으려는 모양이라고 눈물바람을 했다더니 어머니는 떠날 채비를 다 한 후에도 간병인 아주머니의 손을 놓지 않았다.

 

할머니, 젊었을 때 사시던 데 있잖아요. 지난번에 텔레비전에 나왔던 바다, 배도 떠다니고 등댓불도 반짝반짝하는 바다. 따님이 거기 구경시켜 드린대요. 맛있는 것도 많이 사드리고. 할머니는 참 좋으시겠네. 할머니, 좋은 구경 많이 하고 빨리 돌아오세요. 제가 꼼짝 않고 기다리고 있을게요. 얼른 오셔야 돼요. 다녀와서 재미난 이야기도 많이 해 주시고. , 그럼 약속!

 

간병인 아주머니와 손가락을 걸고도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차에 오르기는 했어도 어머니는 내내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어쩌란 말인가. 어머니가 쓰러진 지 9개월 남짓, 그동안 내가 흘린 눈물은 얼마나 뜨거웠고, 잠 못 이룬 밤은 얼마나 많았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신에게 바친 나의 기도는 또 얼마나 간절했던가.

 

안타까움 반, 야속함 반, 터질 것 같은 감정을 누르며 그저 감사하자고, 기적 같은 건 바라지 말자고 나 자신을 다독이면서 차를 달렸다. 길은 멀었고, 다섯 시간쯤 걸려 도착한 그곳은 낯설었다. 3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말해주듯 해안을 따라 너른 도로가 뚫리고, 소박하던 마을에는 번듯한 상가며 큰 건물이 즐비했고, 우리가 살던 집 역시 자취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길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함으로 발을 뗄 수가 없었다. 낯선 풍경에 갇힌 듯, 한참을 서있는데 어머니가 가만히 내 손을 잡았다. 따뜻했다. 왠지 모를 슬픔이 그 손을 잡고, 나보다 훨씬 더 젊었던 마흔한 살 어머니의 기억을 찾아 나서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엄마, 저기 생각나? 저쪽에 우리 집 있었잖아. 저기는 아침에 배 들어오면 양동이 들고 가서 오징어랑 심퉁이 같은 거 사 오던 데고. 저쪽에 있던 큰 살구나무. 비 오던 날, 둘째가 우산 쓰고 살구나무 밑에 앉아 있었지. 살구 떨어질 때 기다린다고. 그리고 저기, 저 빨간 등대에서 아버지랑 낚시했었는데. 그때 막내가 낚싯바늘에 발가락 꿰어서 울고불고.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고 웃지도 않았지만 빨간 등대에 이르기까지 긴 방파제를 걷는 동안, 비로소 나는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고단하고 외로웠던 삶, 눈물 많았던 어머니의 인생을 환하게 밝혀 주었던 짧은 행복의 날들을.

 

30년도 더 지난 그 즈음 어머니는 직장을 옮긴 아버지를 따라 난생처음으로 늦깎이 분가를 했다. 혹독한 시집살이에, 불화를 물어 나르는 동기 간, 일도 많고 탈도 많은 대가족 살림에서 잠시나마 놓여났으니 그 기쁨이 오죽했으랴. 적으나마 아버지의 월급을 쪼개어 요모조모 알뜰하게 쓰는 재미에, 오롯이 내 식구만 끌어안고 살아도 되는 즐거움은 또 얼마나 컸을까.

 

어머니가 오래도록 마흔한 살을 사시길 바랐지만, 어머니의 봄날이 그러했듯 어머니의 마흔한 살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마흔한 살의 봄날을 그리워했던 어머니가 마흔한 살의 봄날조차 잊어버린 채 아주 먼 곳으로 떠나신 후, 나는 마흔한 살의 어머니를 찾아 가끔 그곳에 가곤 한다.

 

열 달을 태중에 품어 보호해 주시고 해산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시는 이, 세상 온갖 좋은 것 귀한 것을 먹이고 입혀 주시고 궂은일 힘든 일을 도맡아 하시는 이, 자식을 위해서라면 나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평생 변함없는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는 이. 때늦은 후회로 가슴이 젖어드는 어머니의 바다, 방파제 끝 빨간 등대의 불빛이 부모 은중경의 구절구절을 짚어주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