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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야기 | 공들인 시간만큼 소중하다? - 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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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1-03-01 15:11 조회8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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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들인 시간만큼 소중하다?

백일홍 Zinnia

 

백 일, 일단락되는 기간

곰과 호랑이가 환인의 아들 환웅에게 와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스무 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일렀습니다. 곰은 잘 참고 삼칠일 만에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호랑이는 참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단군신화의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저는 늘 백 일이란 부분에 눈이 머뭅니다. 왜 하필 한 달도 아니고 일 년도 아니고, 딱 백 일이었을까요? 백과사전에서는 백 일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 일은 성수(成數)1극점(一極點)이며 범물완성(凡物完成)의 일대 단락을 표상하는 것이다.” 말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백 일이라는 기간을 통해 하나의 상황 혹은 사물이 일단락을 짓고 완성된다는 뜻일 텐데요. 따라서 태어난 지 백 일째 되는 아기에게 주는 백일상이라든가 아기를 갖기 위해 조상들이 백 일 기도라든가 사람이 죽은 지 백 일째 되는 날 드렸던 백일제(百日齋)’등도 모두 같은 맥락에서 그 의미를 읽어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백 일이라는 기간을 통해 아기는 한 명의 완전한 존재로 거듭나고, 아기를 원하는 기도는 그 뜻이 하늘에 닿고, 죽은 사람은 하늘나라의 새 생활을 잘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겠지요.

 

죽어 꽃으로 피어난 아내

백일홍(百日紅)’은 백 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한여름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백일홍은 마치 동굴 속 곰이라도 된 듯이 꿋꿋하게 백 일을 지키며 꽃을 피웁니다. 요즘은 품종 개량을 통해서 다양한 색깔의 백일홍도 생겨났지만, 그래도 역시 백일홍은 빨간 꽃일 때 가장 돋보입니다.

혹시 백일홍에 얽힌 이야기를 알고 계시나요? 배를 타고 괴물을 죽이러 떠나는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돌아올 때 배의 돛이 빨간색이면 죽은 것이요, 흰색이면 산 것이니 그렇게 아시오.”

하루도 빠짐없이 바닷가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백일째 되는 날, 드디어 돌아오는 남편의 배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배에는 흰 돛이 아니라 빨간 돛이 올려져 있었고, 이에 실망한 아내는 그 자리에서 그만 쓰러져 죽고 맙니다. 그런데 곧 육지에 도착한 배에는 남편이 타고 있었습니다. 돛이 빨간색이었던 것은 괴물을 죽일 때 튄 핏방울이 돛을 붉게 물들였기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리 없습니다. 그 대신 아내가 죽은 자리에서 꽃이 피어났습니다. 백 일을 하루같이 남편을 기다렸을 아내의 간절함, 자신의 실수로 아내가 죽은 걸 괴로워하는 남편의 애절함, 이 모든 감정을 담은 빨갛고 빨간 백일홍이 피어났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꽃

백일홍은 꽃에 얽힌 전설만 보면 우리 고유의 꽃 같지만 실제로는 멕시코가 고향입니다. 멕시코에서 16세기 이전부터 재배되었고, 18세기 중반 유럽에 들어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름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백일홍이라 부르지만, 서양에서는 전형 상관없는 지니아(Zinnia)’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니아라는 이름은 독일 괴팅겐대학의 식물학 교수였던 요한 고트프리드 진(Johann Gottfried Zinn)으로부터 유래한 것인데, 이 식물학자가 맨 처음 백일홍을 국화과 식물에 포함시켰기 때문입니다.

백일홍은 아이들과 함께 심으면 참 좋은 꽃입니다. 큼지막하고 밝은 색의 꽃이 아이들 눈에 금세 뜨일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시들지 않아 아이들이 잊지 않고 꾸준히 관심을 보입니다. 화분에 백일홍을 심을 때는 백일홍만 심어도 예쁘지만, 다른 식물들과 함께 심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다른 색의 꽃을 함께 심으면 알록달록하게 어울린 색깔들이 보기 좋고, 녹색의 관엽식물을 함께 심으면 작은 숲속에 들어온 것 같아 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시든 꽃을 빨리 따 주기만 하면 다른 꽃봉오리에서 계속해서 꽃이 나와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도 환한 꽃밭 속에서 살 수 있습니다.

 

무언가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

백일홍을 보려고 마당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왠지 오늘따라 백일홍의 예쁜 꽃이 더더욱 예뻐 보입니다. 마늘과 쑥만 먹으며 굴속에서 버텼던 곰처럼, 돌아올 남편을 매일 바닷가에서 기다렸던 아내처럼 그렇게 백 일 동안 꽃을 피우는 백일홍의 마음씨가 제게 전해진 것 같습니다.

백일홍의 이 마음씨가 백일홍을 보는 아이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 B612혹성에 있는 장미가 그 꽃을 위해 자신이 공들인 시간 때문에 소중한 존재란 것 깨닫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나 흔하고 돈만 있으면 금세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진짜 소중한 것은 단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때로는 힘들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참아야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소중한 일일수록 정성이 필요하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아이들이 백일홍을 보며 깨닫기를. 한여름 땡볕 아래 서 있는 백일홍처럼 우리 아이들이 활짝 피어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