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총지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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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선성취 | 불가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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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총지종 작성일22-09-30 13:46 조회9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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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일은 4살 때의 일이다. 그날은 외할머니의 장례 마지막 날이었다. 외할머니의 상여는 외갓집을 나와 남해 갈화리 마을을 가로질러 논과 밭을 지난 후 마을 뒷산으로 향했다. 4살 나이의 나는 죽음과 장례에 대한 관념적인 개념은 당연히 없었고, 삶에 대한 의미도 모른 채 외할머니 상여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리고 호기심이 많았던 어린 나는 어느 순간 상여와의 거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시골의 논과 밭에는 농사철에 물을 대기 위해 사이마다 물웅덩이를 파 놓는다. 나는 그곳에 빠져있었다. 왜 물웅덩이에 빠졌는지, 어떻게 빠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는 것은 물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그 순간부터였다. 삶의 의미도 모르는 4살 나이의 나는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물 웅덩이는 마치 우물처럼 돌로 높이 쌓아올린 웅덩이였다. 나는 필사적으로 살기위해 돌을 부여잡고 기어오르려 노력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힘으로는 오를 수가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논길사이를 맨발로 울면서 뛰어 내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물웅덩이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맨발로 울면서 뛰어 내려오는 그 순간부터이다. 왜 물웅덩이에 빠졌는지, 어떻게 물웅덩이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외갓집에 도착한 나는 외사촌형의 손을 잡고 그 물웅덩이로 다시 갔다. 외사촌형은 물웅덩이에 둥둥 떠 있던 내 신발을 대나무 작대기로 건져주었다.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은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나를 살려주었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성인키보다 깊고 높은 물웅덩이를 4살 꼬마 혼자 나올 수 없기에 이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어느덧 40년의 세월이 흐르고 승직자가 된 나는 내가 왜 물웅덩이에 빠져야 했는지 그리고 물웅덩이에서 어떻게 다시 나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승직자가 되기 위해 시무생활을 시작한 나는 불공을 하면서 과거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잘못한 일이나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마음 아프게 했던 일이 생각나면 참회불공을 했다. 이윽고 내 기억은 4살 때의 그 일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이전의 일은 생각나지 않았다. 몇 달의 시간이 지난 후 새벽불공중에 꿈속의 일인듯 그날 이전의 날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상세히 말할 수 없다. 그 일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다. 이 세상에 기적이라는 것은 없다. 인과 연으로 이루어진 기나긴 삶의 흐름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의 발생을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연히 일어나는 기적은 없다. 단지 우리가 그 인과 연을 기억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교에서는 이러한 일을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한다.